권력지향적인 전두환이 출세가도를 달리던때
최규하와 정승화가 자신의 대통령을 향한 열망에
걸림돌이 되려고 하자(하나회 조직 조사및 제거)
군 사조직 하나회 출신 멤버들과 함께
수도 서울점령 계엄령 선포를 함으로써 1979년 12월 12일 벌인 일이다.
요새는 군사반란이라고 바꿔서 부르는 모양이나
난 12.12사태라고 배웠기 때문에 익숙해진 명칭을 바꿔서 부르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사태와는 별개로 말로는 항상 민주화를 부르짓던 김영삼 김대중
얘네들은 내가 보기엔 전두환과 똑같이 자기들이 대통령이 될 욕심에
민주화라는 도구를 이용한 또다른 대통령병에 걸린 애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예로 1987년 김영삼 김대중 단일화가 안된채로 김영삼 밀어주기에
심기가 불편했던 김대중은 홀로나와 김영삼과 갈라졌고 분열된 표심은
전두환의 후계자랄수 있는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게 만들었다.
이때 틀어진 김영삼과 김대중은 김영삼이 노태우 김종필의 당과
3당합당을 하게 만들었고 이는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합당으로 전라도 경상도 대립구도가 더 공고해졌고
박정희때부터 시작된 지역감정에 기반한 표심이 이어진셈이다.
솔찍히 둘다 지역감정에 기반한
표를 얻었기에 누가 피해를 봤느니 할것도 없다.
신안 섬노예 사건을 봐도 얘네는
매번 말하는 피해의식+극성스러움 장착으로
인해 별로 피해자같지도 않다.
자신들이 가해자가 될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가혹하게 될수 있는 것들이면서
(신안 섬노예, 여교사 집단 성폭행 사건)
너무 전라도 애들 지들만
피해자 코스프레하면서 울궈먹는거 아닌가 싶다.
시간을 앞으로 돌려서
전두환은 단임제로 임기 7년을 마치고
(원래 6년이었으나 전두환이 럭키7을 좋아해서
7년으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음)
상왕으로써 여전히 권력의 실세로
남고 싶어했지만 6.10항쟁으로 인해
노태우에게 6.29선언 발표와
이후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도
청문회에 나와 국회의원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당하기도 했다.
1988년쯤인가 이때 눈에 띄던 인물이
노무현이었는데 후에 정몽준과
후보단일화를 통해 대통령까지 당선될줄은 몰랐다.
아무튼 김영삼 김대중 둘다
민주화 라는것을 도구로 삼아
자기들의 대통령병을 향한 열망을
양보없이 부딪힌 결과가
1987 후보단일화 실패와 노태우 당선
1990년 민정 민주 공화당 3당합당
1992년 김영삼 당선
1997년 김대중 당선으로 이어진 셈이다.
단일화를 거부한 김대중의 욕심이
결국 이런 사태를 만든셈이기도 하다.
그리고 난 이회창이 당선되길 바랬는데
김영삼 정권하에서 IMF사태가 워낙
큰 위력을 발휘하는 바람에
이회창이 타격을 받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려고
정적이었던 민정 공화당과 손을 잡았고
김대중 역시 공화당에서 이름바꾼
김종필의 자민련에게 총리직+의원내각제를 제안하면서 손을 잡아
자신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달성했다고 본다.
후에 의원내각제를 요구하는 김종필의 요구에도
김대중은 모르쇠로 일관해버렸지
정말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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